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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미술 사조 중 가장 좋아하는 것 3가지를 꼽으라면 신고전주의, 바로크와 함께 17세기 후반의 네덜란드 정물화를 꼽는다. 신고전주의는 차가운 느낌을 줄 정도로 엄밀하고 정교한 묘사에 흠뻑 빠져서, 바로크는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좋아했다. 17세기 후반 네덜란드 정물화는 너무나정교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는 하는데, 난 오히려 그 점 때문에 그 시기의 정물화에 빠졌다. 그런데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다룬 미술서적은 거의 없었다. 신고전주의와 바로크도 대중적으로 그리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단행본이 있는데, 17세기 후반 네덜란드 정물화는 단행본조차 찾기 힘들었다. 혹시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는 점 말고는 딱히 이야깃거리를 찾아볼 수 없어서 그런 것일까.이 책은 그 드문 네덜란드 정물화 서적 중의 하나다. 소비시장을 의식하는 예술품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17세기 네덜란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근세까지만 해도 미술 시장의 큰 손 은 교회와 왕실 및 귀족이었다. 때문에 성화나 부유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의 거대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네덜란드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애초에 네덜란드는 시민 중심의 상업국이었던데다가, 종교 개혁까지 겹치면서 큼직한 주문 은 거의 끊겼다. 대신 상업으로 부를 쌓은 시민 계층이 새로운 미술시장의 고객으로 떠올랐고, 그들이 선호하는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네덜란드의 상인 계층은 전통적인 귀족 계층을 동경하거나 그들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당당하고 자긍이 강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설프게 귀족들의 생활방식을 따라하려고 했을 것이고 미술품 역시 전통적인 주제와 도상의 작품들을 원했으리라.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은 네덜란드 정물화에 주로 나온 도상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정물화 정중앙에 놓여 있는 사물은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배열된 사물에는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쳐 지나가는 대상에 시대가 있고, 사상이 있고, 사회의 분위기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것이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정확히 말하면 네덜란드 정물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사실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세부 묘사는 사진보다도 더 정교하다. 사진은 카메라의 빛이 구석구석 균일하게 비치지는 않고, 어딘가에는 그늘이 지거나 희미한 구석이 있기 마련인데 정물화에는 그런 곳도 없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현실감이 떨어진다. 개인적으로야 아이러니한 비현실성 때문에 오히려 그 시기의 정물화를 좋아하지만, 너무나 사실적인 세부 때문에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는 건 역설적이다. 문득 <디테일>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너무 지나친 세부묘사는 전체 그림의 흐름과 통일성을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했었던가. <디테일>에서는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회화성은 떨어지는 작품을 일러 한 말이었지만, 네덜란드 정물화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적용되는 말이다. 하기야 네덜란드 정물화는 처음부터 그런 점을 의도했다고 할 수 있으니, 결점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스틸 라이프 (Still Life) 또는 나튀르 모르트 (Nature Morte)라 불리는 서구의 정물화에 대한 책이다. 정물화는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본격적으로 제작되는데, 이 시기의 네덜란드는 경제뿐 아니라 문화의 황금시대 (The Golden Age)로서, 정물화 외에도 풍경화, 장르화, 초상화 등 참신하고도 다양한 장르가 생겨나 꽃피었다.

1. 좋은 회화는 자연의 거울
2. 삶과 죽음의 부단한 순환. 사계절
3. 죽음과 부활의 유비. 사원소
4. 오감각의 알레고리
5. 동일성과 차이에 의한 질서화
6. 시각적 백과사전. 경이의 방
7. 물거품 같은 아름다움
8. 메멘토 모리. 바니타스
9. 아르스 모리엔디
10. 카니발 소시지와 수순절 청어
11. 살의 욕망과 눈의 탐욕
12. 악덕이 판을 치는 욕망의 시장
13. 절제의 알레고리 템페란티아
14. 유리구와 거울에 비친 세계
15. 즐거움과 교훈의 결합
16. 사랑의 묘약. 굴 전채와 과자 후식
17. 풍요. 결실. 부패의 과일
18. 선과 악의 선택의 모티프
19. 제한된 색채의 변주
20. 사치스러운 여노히. 프롱크 정물화
21. 백조의 죽음. 그 장엄함과 고상함
22. 사랑과 즐거움의 시간
23. 테아트룸 문디. 자연의 책 .
24. 퍼스펙티브의 교란. 눈속임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