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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과 패턴

fdhv 2024. 1. 23. 08:58


이 책을 읽으면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계속 떠올렸다. 대체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이 게이트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더 거슬러 올라가면 3년 전 정윤회 문건 사건은 애꿎은 최 경위만 누명을 뒤집어쓰고 자살당하고 덮였는데, 그 3년 간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번엔 덮을 수 없이 일파만파 퍼졌을까 최순실이 고영태에게 개를 맡기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여 ‘퍼피게이트’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이대는 미래라이프 설치 문제로 이미 오랫동안 본관 점거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이 농성의 논점이 정유라 학사비리로 옮겨붙은 것이 핵심적... 아니, 진경준 게이트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문이 확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 무엇보다 jtbc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이 고스란히 담긴 태블릿피시를 주운 것이 큰 전환점이 아닐까? 아니,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한 것이 이 모든 일의 배경이 아닐까? 그리고 연이은 대규모 촛불집회가 국회를 압박하고 결국 탄핵을 이루어내고.. 아니, 더 크게 보면 박정희의 망령이 갈 데까지 가서 박근혜라는 최악의 대통령을 탄생시키고 그 반작용이 너무 심해서 역사의 자정작용이 일어난 필연적인 과정일 지도... 보는 관점에 따라 핵심적인 사건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모든 관점이 일면 맞는 구석이 있다. 본격적인 탄핵 국면에 접어든 이후에는 폭로 하나가 더해지고 덜해진다고 해서 전체 진행이 바뀌진 않았을 것 같다. 촛불집회에 몇 명 더 오고 덜 오고 역시 큰 차이가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100만4명이 참가했든, 100만명이 참가했든, 그게 무슨 차이란 말인가? 그런데 100만과 10만의 차이는 있다. 100만과 1만은 또 다르다. 그리고 100만은 그 와도 되고 안 와도 되는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나온 숫자다. 집회 간다는 sns 포스팅이 유행하고, 뉴스에서 촛불의 장관을 다루고, 집회 한 번 할 때마다 바로 정치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그렇게 집회는 증폭되었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사건을 내다보는 초능력자가 이 모든 게이트를 덮기 위해서 최순실이 고영태에게 강아지를 맡기려 할 때, ‘내가 대신 맡아주겠다’고 끼어들었다면? 그랬다면 지금도 대통령은 박근혜일까? (듀나의 <면세구역> 속 단편 <나비전쟁>도 이런 복잡계 이론을 배경에 깔고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은 내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3년 전 정윤회 문건 사건이 덮일 때에 비하면 ‘해도 해도 너무한’ 일들이 너무 많이 쌓였다. 3년 전엔 모래더미가 낮게 쌓여 있었다면, 2016년은 모래더미가 아슬아슬하게 높이 쌓여 있어 임계 상태에 돌입한 것이었다. 이 상태에서는 어디에 아주 작은 모래알 하나가 떨어져도 대규모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최순실 사태는 事態라고 써야 하지만, 沙汰라고 써보고 싶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 너무 많지만 않으면 대충 무마되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헌재의 탄핵 판결에서도 국정농단만 탄핵 사유가 되지 세월호, 블랙리스트 등은 사유가 되지 않았다. 세월호나 블랙리스트는 해도 해도 너무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한국은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나라라서 나대블츠 같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야 임계상태가 되지만, 독일은 총리가 호텔 업그레이드만 받아도 임계 상태가 되어 탄핵된다. 한편 최규석은 만화 ‘백도씨’에서 사회 변혁의 순간을 상전이에 비유해 1987년 6월이 물이 100도씨가 되어 끓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isa&no=514079 -하지만 사람도 백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텨내셨습니까-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허허허.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늘 99도다. 99.99도라고 해야 더 정확할까? 그러니까 사회운동가는 늘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하는 걸까. (빡세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소수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독립은 강대국의 고려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괜히 독립운동을 했던 것일까. 어쩌면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약간 대세를 타는 것이 더 현명할 것 같다. 정말 힘들 때는 내실을 다지며 낮은 포복을 취하는 게 나을 거다. <창가의 토토>는 제국주의와 전쟁의 광기가 일본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을 때 한 교육가가 조용히 운영하던 자율주의적인 초등학교를 다녔던 한 여성의 발랄한 회상기이다. 군국주의가 지배하던 일본에 이토록 해방구같은 학교가 있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 결국은 그 학교도 압력에 못 이겨 폐교하고 말았지만, 그 몇 년 사이에 마침 그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훗날 평화 일본을 만들어가는 씨앗이 된다. 반전 투쟁의 선봉에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냥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당췌 내 영향이 어느 방향으로 튀고 증폭될지 알 수 없으니 판단하고 예측해봐야 무슨 소용 있나 싶기도. <우발과 패턴>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자. 다들 어렴풋이 감을 잡고 있을 것이다. 즉 작은 역사적 우연이 미래의 경로를 바꾸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에서는 어떤 작은 변화도 큰 연쇄로 이어진다는 내용을, 이런 과학책에서 접하지 않더라도 지난 몇 달간의 뉴스를 보고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 변화가 큰 연쇄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를 임계상태라고 부른다. 임계상태는 특이한 성질이 있는데, 다음에 얼마나 큰 사건이 나타날지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큰 사건과 작은 사건의 비율은 간단한 규칙을 따른다. 이 규칙은 멱함수 법칙이라고 한다. 사건이 작을수록 많이 일어나고 사건이 클수록 적게 일어나지만, 사건 크기의 한계는 없다. 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큰 사건도 아주 드물지만 일어날 수는 있다. 그래서 지진을 예측할 수 없고, 지진 크기의 한계도 이론적으로는 없다. 목성에는 지구 크기의 허리케인이 생긴다고 하니.. 다른 거성에는 태양만한 허리케인도 생길 수 있겠지 지진, 산불, 모래더미 게임, 주식 가격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상품 가격변동, 부서진 냉동 감자의 파편, 사람의 심장 박동, 눈송이, 결정 성장, 입자 가속기 속의 전자 덩어리, 자석, 원자로 속의 핵반응, 메뚜기 피해면적, 전염병의 전파, 펄서가 깜빡이는 주기, 진화사에서 생물의 대량멸종, 생태계의 먹이 사슬, 대도시의 규모 분포, 사람들 사이의 빈부 격차, 연구 논문의 인용 횟수 분포, 여러 전쟁의 사망자 수가 모두 이 분포를 따른다! 책 내용은 계속 반복된다. 지진 횟수는 지진 에너지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멱함수를 따른다. 놀랐지? 산불도 멱함수를 따른다. 놀랐지? 주식 가격 변동도 멱함수를 따른다. 놀랐지? (...이제 안 놀랍거든?;;) 끝까지 이 모양이라 술술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아직 모름. 그냥 우리는 괜한 예측에 힘을 빼는 게 현명할 것이다. 한편 분위기 전염에 따른 주기적인 광기를 제어해야 할까? 제어가 가능하기는 할까? 책갈피-지성사가 아이자이어 벌린 Isaiah Berlin 은 한 때 사상과 문화의 역사를 두고 “위대한 해방의 사상이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질식시키는 구속복으로 변하는 패턴”이라고 말했다. -실제의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어떤 단계에서건 어떤 변경에 의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될 수 있을 때, 우리는 개별 사건의 인과적인 힘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고 논쟁하게 된다. 그 사소한 일들 모두가 각자 거대한 변화의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발성은 즉각적인 사건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왕국은 말굽에 박을 못이 부족해서 망할 수도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역시 굴드는 문장력이 뛰어나다.. 난상-믹서기에서 갈리는 것도 카오스인 듯. 분명히 충분히 곱게 갈았다고 생각하고 열어 봐도 칼날을 피한 궤도를 공전한 큰 덩어리가 발견된다.-노르웨이 오슬로의 젠스 페더는 아들 한스 자콥 페더(아직 고등학생이었다)와 함께 연구 진행. 아버지가 과학자면 아들도 당연히 어릴 때부터 연구를 접할 수 있겠지. 아버지가 아들 대입에 쓰라고 연구를 몰아주는 건 비윤리적일까? 대놓고 하지도 않은 연구에 선물 저자가 되는 건 당연히 비윤리적이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109743&ref=A 그런데 진짜 참여했다면? 이 역시 공정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실상 문제는 안 된다... -임계상태에서는 질서의 힘과 무질서의 힘이 영원한 전투 상태. 뒤집기 게임도 비슷한 듯. 카드를 잔뜩 펼쳐놓고 한 팀은 앞면이 많이 나오면 이기고 다른 팀은 뒷면이 많이 나오면 이기는 게임이다. 게임 시간 1분 동안 처음부터 열심히 뒤집거나 10초 남겨놓고 뒤집기 시작하거나 승률은 비슷함.. -멸종에 대해 내부적합도/피식-포식/외부충격 모두 통합한 모델 만들 수 있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듯? 먹이사슬을 꾸려놓고 각 종마다 niche 점유도, 외부 충격에 대한 resilience, 도약에 필요한 골짜기 깊이를 각각 주고 이 수치들이 무작위적으로 변하는 와중에, 무작위적인 크기의 외부충격이 때때로 오게 하면 되잖아-완전한 무질서, 완전한 질서 모두 정보량이 낮고 따분하다. 임계점은 정보량이 많은 상태이기도 하다!-한의학의 어떤 개념이 주류의학의 크거나 작은 혁명의 시발점이 될 거란 예감이 든다. 물론 한의학 자체도 완전 해체 후 재조합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과정을 닝겐은 못 하고 인공지능이 해야 할 것 같음.
인간의 역사에서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은 무수히 많이 벌어져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등, 세계의 곳곳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크기로 찾아와 지구를 아프게 한다. 도대체 이런 일들은 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벌어지는 걸까? 우리는 이런 현상을 그저 무작위적인 해프닝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걸까? 세상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그 원인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걸까?

이 책 우발과 패턴 (원제 : Ubiquity)은 이렇게 비평형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복잡한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격변을 통쾌하게 꿰뚫어 본다. 역사의 격변 속에 보편적인 규칙이 존재한다는 발견은 무척 흥미롭고 도발적으로 느껴진다. 책의 저자 마크 뷰캐넌Mark Buchanan은 비평형 물리학, 임계상태, 멱함수 법칙에 대해 그 어떤 책보다 간결하고도 명쾌한 설명을 내놓는다. 또한 그는 역사를 물리학의 눈으로 보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자연 현상은 물론 우리의 삶과 역사,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추천의 글_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장경덕(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1장 제일 원인
2장 지진
3장 터무니없는 추론
4장 역사의 우연
5장 운명의 돌쩌귀
6장 자석
7장 임계적 사고
8장 살육의 시대
9장 생명의 그물망
10장 난폭한 변이
11장 모든 의지에 반하여
12장 지적인 지진
13장 수의 문제
14장 역사의 문제
15장 결론을 대신하는 비과학적인 후기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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