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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의 첫문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상의 <날개>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라고 말하리라. 김훈 선생의 인터뷰를 보고나서야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웠다"의 깊은 의미를 알았지만,아래 글만큼 강렬하고 스산한 첫문장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 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
어느 정도의 내공을 쎃아야지만 저 같은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대중적인 면이나 인기면에서는 떨어지지만 독창적인 면에서 만큼은 박상륭과 대적할 만한 한국작가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그의 작품을 다 이해하면서 읽기에는 내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창 박상륭의 소설에 빠져 있을 때는 옆에다 사전을 놓고 읽어야 할 정도였다. 고도의 집중과 몰입을 해야 하고 이미지와 느낌으로 문장을 따라가야한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는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야 한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몇 번이고 문장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만의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불교지식이 첨가되면 더욱 좋다.
이 소설을 토대로 양윤호라는 신예감독이 <유리>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콧방퀴를 꼈다. 괜히 작품만 버려놓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예상대로 영화 또한 어렵고 난해했다. 그 방대한 분량을 담기에는 스토리나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소설이 전하려고 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영상의 옷을 입고 멋있게 재탄생했다. 거칠고 파격적이었지만처연하고스산한 여백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 했다. 몇 번을 봤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배우가 된 박신양의 데뷔작. 그의 연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박신양의 출연작을 볼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나곤 한다. 무엇보다 감히(?)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한 양윤호 감독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스티브 잡스 때문일까? 요즘 들어 자꾸만 이 책 생각이 난다. 십대 후반부터내 자신과 치열하게 대립각을 세우며 종교에 대해 이리저리 방황한 탓일까? 아니면 근래에 들어 박상륭 같은 문장과 문체, 서사를 가진 작가를 만나지 못한 갈증때문일까? 문장으로 내 어깨를 후려칠 죽비같은 소설이 필요하다. 강한 충격파가없고서는 당분간 소설 읽기도 어려울 것 같다.
가끔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한다. 20대에 읽었던 책들을 환갑이 넘어서 다시 읽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나는 <어린왕자>, <장자>, <구토>그리고 이 책을 그 나이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정말 너무 궁금하다. 어떤 기분이 들까?
기독교,불교,연금술,설화 등의 우주관을 공통된 구조로 보면서 죽음을 통해 불멸적인 인신의 구극을 완성하는 고행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구현하는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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