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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 체 게바라
나의 형은 전날 밤 체포되었다. 굶주림과 갈증으로 인해 극도로 허약해진 게릴라들이 정부군에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사방으로 흩어진 가운데, 나의 형은 이곳(볼리비아의 남부 버려진 마을 라 이게라(La Higuera))으로 피신했었다. 형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침착하게 겨냥하게나. 자네는 그저 한 남자를 죽이는 거니까” 그토록 비열한 짓을 하라고 명령받은 병사는 마리오 살라사르(Mario Salazar)였는데, 그 순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나의 형은 오래전부터 볼리비아군에게 첫째가는 공공의 적이었다. 아니, ‘체 게바라’라 불리는 나의 형은 어쩌면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분명 영광의 아우라에 둘러싸인 신비의 인물이자 정의와 공정성, 그리고 엄청난 용기로 유명한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순간, 형은 그 크고 깊은 눈으로 마리오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 순간 마리오의 눈에 나의 형은 상관들이 말하던 잔인한 혁명가가 아니라 없는 자들의 친구이자 보호자로 보이지 않았을까. 마리오 살라사르는 비 오듯이 땀을 흘리며 방아쇠를 당기기 위한 용기를 끌어내려고 했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닥쳐왔음을 실감하며 조용히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체를 바라보다가, 그는 돌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상관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와들와들 떨고 있는 그를 강제로 다시 들여보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형은 선 채로 죽었다. 그들은 모욕을 주기 위해 앉은 채로 죽이려 했지만 형은 끝까지 저항했고 그렇게 마지막 전투에서 이겼다. p.10~11*********************************************************************** <나의 형, 체게바라>에서 묘사되고 있는 체 게바라의 죽음 장면이다. 이 책은 체 게바라의 막내동생인 후안 마르틴 게바라(Juan Martin Guevara)에 의해 쓰여졌다. 그는 형의 쿠바 혁명 과정에 직접 동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의 몰락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인 체 게바라가 어떻게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족으로서, 동생으로서 체 게바라를 가까이서 봐왔던 그이기에 체 게바라의 인간적인 면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 체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이다. 이때부터 에르네스토는 ‘체(che) 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가 이처럼 불리게 된 이유는 교양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하나의 문장을 시작할 때 습관적으로 서두에 ’체‘라는 말을 붙이곤 하는데, 이 말은 스페인어로 ’오!‘, ’어이, 친구‘라는 의미로 에르네스토 또한 그러했기에 동료 병사들이 그런 별명을 붙인 것이었다. 이것이 그가 ’체 게바라‘로 불리게 된 이유다. p.142~143 책에서 체 게바라가 5명의 자식들에게 보냈던 편지도 소개되는데, 그는 자식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의에 방관하지 말라고 당부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우리 아가들, 일다, 알레이다, 카밀로, 셀리아, 그리고 에르네스토야, 언젠가 너희 손에 이 편지가 쥐어진다는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못한다는 말이겠지. 너희는 이제 나에 대한 기억이 거의 희미할 테고, 대부분 나의 얼굴도 모를 거야. 아빠는 항상 이상을 향해 행동하는 남자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념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얘들아, 훌륭한 혁명가로 성장해다오. 본성을 지배할 수 있는 기술이 몸에 배도록 열심히 공부해라. 우리 각자는 혼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고독하고 미약한 존재다. 그렇기에 혁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라. 무엇보다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을 향해 저질러지는 불의이건 간에 너희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이것이 혁명가의 가장 아름다운 품격이다. 영원히, 나의 아가들아, 너희를 다시 보리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빠가 수없이 많은 키스와 열렬한 포옹을 보낸다. p.287~288 지독한 천식 때문에 징병검사에도 불합격 판정을 받았던 체 게바라가 어떻게 쿠바 혁명군의 사령관이 될 수 있었을까?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5만명의 군대를 달랑 3000명의 병력으로 어떻게 싸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체 게바라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도 유명한 오토바이 여행을 하면서 가진 자들(제국주의자들)의 무차별적인 수탈과 민중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언젠가부터 미국을 ‘아메리카(America) 라고 부르는 걸 거부했다. 미국만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말을 미국 혼자서만 독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p.127~128 이러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살아 있는 인본주의 세상을 꿈꾸게 한다. 그가 이런 신념을 갖게 된 데에는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도 5남매를 꿋꿋이 키워낸 어머니의 영향도 컸으리라. 아들이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연락을 받고 어머니는 한 잡지사 기자에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체 게바라의 어머니 또한 남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년이란 세월은 우리 아들에게 아주 중요하고도 강렬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많이 변했을 거예요. 나는 한 번도 아들의 자유를 구속하려 한 적이 없어요. 남편이나 제가 그 아이를 구속했다면 오늘날처럼 동지와도 같은 관계가 유지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우리 아들은 단 한 번도 가족과는 맞서 싸울 필요가 없었지요. 우리는 항상 그 아이를 이해하고, 고뇌를 나누려 노력했답니다. p.31 또한 아들이 체 게바라라는 이유만으로 우루과이의 감옥에서 2달간 보냈을 때는 막내아들에게 분노를 담은 편지를 쓰기도 했다. 여기는 인간성을 망가뜨리는 곳이야. 정치범뿐만 아니라 일반 수감자들에게도 그렇단다. 이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네가 지금 미온적이라면 더 활동적이 되고, 활동적이라면 더 공격적이 되고, 공격적이라면 한층 더 무자비해져라. p.189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고, 장관직까지 맡으면서, 편안한 삶이 보장되었지만, 체 게바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볼리비아로 다시 모험을 떠나고, 결국 그 곳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가 제게 보낸 모든 사람들은 말하기를, 제가 신념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도 현실과 타협하는 나약한 아들보다 자신이 의무라 믿는 것을 끝끝내 완수하고 의미 있는 곳에서 흔쾌히 목숨을 던지는 아들을 더 자랑스러워하시리라 믿습니다. 쿠바에서, 저는 정의를 위해 싸운 뒤 다른 곳으로 떠나 새로운 의무를 위해 온 몸을 던질 것입니다. 의학연구소나 알레르기 클리닉에 처박혀 평생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임을 어머니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만이 아니라 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어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어머니, 뜨거운 포옹을 보냅니다. p.150 체 게바라가 오늘날까지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그가 가지지 못한 민중을 위해 어려고 힘든 모험을 선택했다는데 있지 않을까?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줄 아는 그였기에 오늘날까지도 그의 저항정신은 여전히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체 게바라가 살아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대한민국 시민들이 찾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세상은 온통 1대 99의 사회다. 이러한 비정상의 사회체제에 의구심을 품고 세상을 바꿔보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체 게바라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그가 끊임없이 회자되는 까닭은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그의 삶이 99%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는 말했다. ‘혁명은 다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민중의 힘으로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다’라고. 그리하여 그는 쿠바에서, 아프리카에서, 남미 대륙에서 그렇게 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가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쿠바혁명을 위해 험준한 산맥을 오르내리면서, 또 다른 혁명의 땅 볼리비아로 떠나면서, 그가 남긴 메시지엔 한결같은 신념이 담겨 있었다. 불의를 절대 외면하지 않고, 정의로운 세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총을 든 게릴라 이전에 억압받는 민중 편에 선 세계 시민이었다!
아르헨티나 좌파운동의 큰 별인 동생이 ‘체 게바라 50주기 추모작’으로 발간한 세계적 화제작!
죽는 순간까지 흔들림 없이 신념과 의지를 온몸으로 실천한 체 게바라는, 총을 든 게릴라 이전에 억압받는 민중에게 무한한 애정을 품고 함께했던 세계시민이었다. 그가 혁명에 성공한 쿠바에서 권력을 내려놓고 다시 불의한 세상으로 돌진해간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체제를 갈아엎지 않는 한 권력의 부당한 압제가 계속될 사회에서,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게릴라활동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체 게바라 관련서적들은 그의 드라마틱한 삶의 내력과 무장 게릴라로 활동한 역동적인 모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왜곡된 이미지를 양산했다. 체 게바라의 정신적 상속자인 동생이자 아르헨티나 좌파운동의 큰 별인 저자는 그동안 잘못 다루어졌던 내용은 물론 미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 면모를 이야기하며 사상가이자 사회개혁자였던 체 게바라의 실제 생애를 오롯이 복원해낸다.
서거한 지 50년이 되는 해에 출간되는 이 책은 그의 삶과 사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담아낸 기념비적 서사시로,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대한민국 시민들이 새로운 지도자는 과연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체 게바라 가계도
1. 체 게바라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며
2. 아바나, 1959년 1월
3. 무일푼의 엉뚱한 커플
4. 공기처럼 가볍게
5. 참으로 독특한 인물
6.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을 목격하다
7. 세상을 알고, 세상을 바꾸다
8.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9. 이 편지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10. 8년 3개월, 그리고 23일
11. 마침내 자유의 날이 오다
12. 아바나로 날아가다
13. 체 게바라의 아이들
14. 우리는 종종 쿠바인들에 대해 오해한다
15.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6. 체 게바라는 살아 있다
17. 벌써 1년, 그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부록: 체 게바라의 [알제(Alger)의 연설문] 중에서
역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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